지난 수요일 우리 성지순례 일행은 오헤어 공항을 밤 9시 30분에 출발하여 11시간 25분의 비행 끝에 요르단의 암만에 도착했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상기된 얼굴들은 암만에 도착하자 더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거룩한 땅을 밟게 되는 설레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물론 8시간의 시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우리 주님과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펼쳐졌던 그 현장을 찾아간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은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그 신앙이 만들어 내는 가치들을 문화라는 그릇으로 잘 담아
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은 먼 훗날에라도 자신들의 선진들이 남긴 문화의 흔적들을 통해서 그 선진들이 살았던 세계로 
찾아가 그 선진들을 만나고, 그들이 삶의 원천으로 삼았던 귀한 것들을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그 분들의 행적이 남긴 희미한 흔적들이지만 우리는 그 분들이 남긴 문화와 삶의 흔적들을 통해서 그분들과 대화하며 그분들의 삶을 
이루어간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내어 나누게 될 것입니다.
 
금요일 오전 7시에 호텔을 떠나서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요르단에 있는 5대 성지 중의 하나인 마켈루스(Machaerus)‘세레 요한의 참수터’였습니다. 희랍어로‘검’을 뜻하는 마카이라(Makhaira, μάχαιρα)에서 유래된 마케루스 사해 북단에서 남쪽으로 약 21km 그리고 사해에서 동쪽으로 7km정도 떨어져 있는 천연적인 지형을 갖춘 해발 700m정도의 산봉우리인데 언덕 꼭대기는 사해 해수면에서 1100미터 높이에 
있으며 언덕 주위로는 사방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천연 요새입니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다의 하스모니아 왕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 BC103-BC76년 재위)가 처음으로 
마케루스 요새를 만들었는데, 그 후에 폼페이의 장군 가비니우스(Pompey’s general Gabinius)가 기원전 57년에 마케루스를 파괴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축의 귀재라고 불리는 헤로데 대왕(Herod the Great, BC37~BC4 재위)이 요르단 동쪽 지역을 견제하고 유사시 피신할 수 있는 요새이자 별궁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원전 30년에 마케루스 요새를 다시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성을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은 바로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열여섯 살에 통치에 들어선 그는 늘 암살의 위험을 느끼며 안전한 곳을 찾았는데 바로 천연의 요새를 거처로 택한 것입니다. 그는 이곳을 단순한 여름 별장으로만 아니라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성터까지는 내리막 길과 오르막 길로 이어지는 꽤 힘든 길이었습니다. 모두 숨이차서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한 분도 포기
하지 않고 모두 다녀왔습니다. 길 옆에 자연 동굴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 동굴이 세례 요한이 갇혀 있었던 감옥이었을 것이라고 가이드
께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 쉽지 않은 길을 숨을 몰아쉬며 오고가며 가이드이신 엄기정 목사님의 말씀이 자꾸만 제 머리에 맴돌
았습니다.“어찌 생각해보면 헤롯 안티파스는 사람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자신을 외딴 성에 가두어 둔 꼴이 되었고, 반면에 하나님만
을 두려워한 세례 요한은 비록 참수를 당하게 되었으나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며 참 자유롭게 살아간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 참 동안 두 사람의 대조된 삶 영상이 되어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주님을 두고‘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겠다’는 세례 요한의 외침이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2017년 10월 15일 김광태 목사 드림